다들 취해서 늦잠자는 바람에 아침에 제 시간이 일어난 사람이 없었다. 빨리 내려와 조식을 먹고 떠날 준비를 하라고 호텔방으로 전화가 와서야 우리는 부리나케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아무리 배가 부르고 피곤해도 호텔조식을 건너뛸수 없었다. 이것 또한 일생 한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중국식 만두빵에 콩우유를 마시고 호텔로비에 앉아 입가심으로 그 유명한 우룽차를 한잔 마시면서 구름낀 산등성이 바라보고 있느라니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황흘했던 2박3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막 떠나려는 찰나 갑자기 호텔매니저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버스를 멈춰세우고 올라탔다. 추가로 물고가야 할 잔액이 있다며 명세서를 부르기 시작했다.
녹차 4 병 (xx 위앤), 과일쥬스 3병 (xx 위앤), 맥주 4병 (xx 위앤), 통라면 4 통 (xx 위앤) 등등…
처음에는 중국주최측에서 돌아가는 동안 먹으려고 산것 이겠지 하고 아무생각없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호텔매니저가 우리가 들었던 방번호를 부르는것이였다. 알고보니 우리가 밤새 먹고 마시고 했던것들이 공짜가 아니였다. 그제서야 호텔화장대앞에 무슨 가격명세서같은것을 본 기억이 났다. 이런 강도같으니라고, 공짜로 주는것도 아닌걸 도대체 왜 호텔방에 갔다놓은거야? 그것도 일반 시장가격보다 3, 4배는 더 비싼 가격에~
주최측에서도 이것은 예산에 없는것이니 100% 본인부담이라고 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비즈니스도 아니고 잠간 실습나온 사람들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때 들고갈 작은 선물용으로 아껴두었던 돈을 다 모았다. 그리고 제일 나이어린 내가 매니저에게 “벌금”을 물고 왔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였다. 뒤이어 다른 북한교수님들이 들었던 방에서도 비슷한 명세서가 나왔다.
각종 음료와 스낵,
추가물세 (그 분들도 욕조에 물을 주구장창 틀어놓고 어지간히 즐긴 모양이다),
추가전기세 (밤새 창문도 열어놓고 에어콘을 틀어놓았었는데 그것도 추가비용이 있었다), 그리고…
남자팬티 1장 –– 20 원,
여자팬티 1장 — 30원.
버스안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남자팬티는 그렇다 치고 여자팬티는 누가 가진거야? 그도 그럴것이 북한팀에는 여성이 한명도 없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이제는 가지고 있는 돈을 다 모아도 추가”벌금”을 물기에 부족했다. 그때 옆에서 자본주의실정을 잘 몰라 이런 봉변을 당하는 우리 북한사람들을 옆에서 측은하게 바라보던 한국유학생 한명이 내 손에 중국돈 100 원을 슬쩍 쥐어주었다. 또 나이어린 내가 그 돈을 가지고 호텔매니저에게 주고 왔고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얼굴이 벌개져 고개를 들수 없었다. 사람들은 마치 그 여자팬티를 지금 내가 입고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게 아닌가? 갑자기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때 그 방에 들었던 교수님들에게 따져 물었다. “도대체 그 여자빤쯔는 어떻게 된겁니까?” 사연을 알고보니 얼마전 결혼한 한 젊은 교수님이 목욕하고 나와 화장대앞에 놓여있던 남자팬티는 자기가 입고 여자팬티는 집에 있는 아내를 주려고 가방에 챙겼다고 한다. 당연히 다 공짠줄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가난한 사회주의나라에서 온 우리는 자본주의호텔에 한번 묶었다가 가진 돈을 다 털리고 나는 삽시에 여자팬티를 입는 “국제변태”가 되여버렸다. 다만 그런 우리를 동정하고 돈을 슬쩍 건네주던 한국유학생에게 마음속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역시 한국인은 정이 많다~
참 재미나게 읽었어요. 한국유학생분 참 고마운분이네요.
지금은 별 생각 없이 여행을 가게되면 자연스럽게 호텔에 들지만 북한에서 나와 처음으로 호텔에 들었을 때의 기분을 생각하면 너무 이해가 됩니다.
웃픈 스토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빤쯔 받고 좋아했을 아내분을 보는 남편 생각을 하니 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