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추운 겨울 날, 나는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국경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 탔다. 부모님께는 장사를 해서 돈 벌어올테니 혹시 소식이 없어도 찾지 말라고 농담삼아, 진담삼아 한마디 던지고 떠난것이 정작 움직이는 열차에 올라 타자 후회로 다가 왔다. 좀 기다리면 꼭 다시 볼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건강히 잘 계시라고 왜 확실하게 말씀 드리지 못했을까~
눈덮인 창밖 사이사이로 가끔씩 보이는 벌거벗은 산등성이와 눈보라를 휘저으며 몰아치는 스산한 겨울바람 소리는 마치 병에 걸려 뼈만 앙상히 남은 온 강산이 아픔과 슬픔, 절망에 빠져 흐느끼는 소리같이 느껴졌다. 그때만 해도 부패와 거짓, 착취와 인권유린으로 가득찬 그 썩어빠진 제도가 이렇게 오래 갈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빠르면 5년, 늦으면 10년이면 다시 돌아가 부모님을 뵐 줄 알았다.
한편 달리는 열차 안에서는 보고도 믿지 못할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화폐를 100대 1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해 각 가정당 단돈 천원씩 (신화폐) 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휴지로 만들어 놓은 정부는 다시 정부기관과 암시장을 통해 새로 찍어낸 신화폐를 대량으로 유통시키고 있었다. 그 결과 한 역전을 지날때마다 물가가 두배로 뛰어 오르는 말로 안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처음에는 10원 하던 김밥이 20원, 몇 정거장 지나니 어느새 100원이 되어있었다. 화폐개혁을 한지 불과 한달도 안지났지만 누구도 북한화폐를 믿지 않아 아예 돈거래는 없어지고 열차위에서는 물건대 물건 교환만 이루어졌다. 가령 삶은 강냉이 1개 와 구운 고구마 2개, 김밥 한줄에 만두 3개, 이런식이였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에 북한에서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인해 원시 시장형태가 다시 복귀됐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때에 찌들어 그을린듯한 누더기 옷차림을 한 한무리 아이들이 들어왔다. 북한의 어디가나 마주치게 되는 꽂제비 들이였다. 제일 큰 애가 10살, 제일 어린애는 4~5살이나 되였을까? 지금처럼 추울때 있던 곳에 그냥 있지 어디 가면 뭔 좋은 일이 있겠다고 기차에 올라탔을까? 빨갛게 얼어버린 볼은 때와 추위로 인하여 거북등껍질처럼 갈라져있었고 배고픔에 빤 손가락은 콧물과 눈물에 씻겨 하얗게 불어나 있었다. 양말도 없이 걸터신은 터진 신발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들은 동상에 걸려 퉁퉁 얼어불은 와중에 감염으로 누런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겠지만 이제 국경을 넘으면 이 꽃제비들도 다시 보기 힘들수 있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동정심이 솟구쳤다. 나는 비상상황을 대비해 가지고 떠났던 약품통을 꺼내 바늘로 고름집을 터뜨리고 알콜로 소독하고 하얀 붕대로 꽁꽁 싸매주었다. 얼어서 신경이 마비되였는지 작은 꼬마애는 신음 소리하나 내지 않고 잘 참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열차보안원이 이러는 나를 불러세워 조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또 왜 연고 없는 꽃제비들을 치료해주는지 꼬치꼬치 캐묻는것이였다. 사람이 쌀 한 가마니만도 못하게 취급되던 북한에서는 무심히 내민 동정의 손길이 오히려 의심을 사는 상황이였다.
그때로부터 십여년이 지났다. 나는 무사히 제3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하여 잘 살고 있지만 아직 부모님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다고 했건만 내 고향땅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여전히 가난과 질병과 억눌림에 신음하는 소리뿐이다. 언젠가는 다시 고향땅을 밟을수 있을까? 부모님들을 생전에 다시 한번 뵐 수 있을까? 그때 치료해준 꽃제비들은 아직도 살아있을까? 이중 하나라도 이루어지면 그야말로 기적일것이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소리와 더불어 내 마음도 얼어붙는다.

근데 열차보안원이 쉽게 보내주던가요? 북한내부에서는 아무 연고도 없는 아픈사람 치료해주는 귀인은 정말 있을수없죠.
문장 한구절 한구절 북한에서 살때의 모습그대로 표현하셔서 눈앞에서 마치 보는것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북한을 떠난지도 한해한해 지나가지만 아직도 꿈속에서는 북한에서 살다가 옵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지금은 뭐든 다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물며 아프고 얼어터진 꽃제비들을 살펴주신 그 마음과 손길은 그 아이들도 잊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아직 살아있다면 말입니다. ㅠㅠ
이 한 해도 다 지나가는 데 와중에 마음이 많이 춥습니다.
그곳만 생각하면 여러 기억들과 함께 변함없이 고달픈 저들을 생각할 때마다 심장이 얼어 붙는데 이글을 읽으니까 그곳을 위해 기도할 수 밖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