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수없이 고향에 내려온 동생은 농장에 들어와 남새반에 배치되여 나와함께 일하게 되였다. 그 남새반장이란 인간은 정말 교활하기 그지없는자인데 반원들을 죽도록 일시키고는 이른봄 애호박이며 오이 가지 등 채소는 배고파 굶주리며 겨우 출근하는 반원들은 외면하고 제일 아첨 잘하고 반반한 여성들에게만 공급하고 자기가족은 흰쌀밥에 콩기름 떨구지않고 사는자였다. 이런자이지만 동생상황이 안타까운지 그리 힘든일은 시키지않았다.
어느덧 다시 대학갈 준비를 다 마치고 마지막관문인 리당비서 관리위원장 싸인받고 최종으로 리청년동맹비서 싸인받으러 갔는데. 헐~~~이놈의 청년비서가 생시비를걸면서 싸인을 안해주겠다는것이였다. 리당비서 관리위원장보다 자기싸인 먼저 받아가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생억지를 부리는것이였다. 청년비서란자는 경보제대군인이였는데 농촌의 순진한 청년들에게서 온갖구실을 붙여 뇌물을 뜯어먹고 사는자였다. 가을이되면 위의 청년조직에서 요구한다는 빌미로 강냉이 콩 담배 등등 걷어내고는 모두 자기집창고에 쌓아놓고 히히닥닥 거리며 사는자였다.
뇌물을 받아먹으려고 수작질하는거 모르는바 아니지만 어처구니 없는일로 뇌물 퍼주기엔 너무나 화가나고 기가막혔다. 동생과 청년비서간의 싸움이 더 커져 가족간의 싸움으로 번져갔다. 청년비서는 찾아간 엄마를 지나가는 거지취급하듯이 천대멸시를 하며 막말을 하였다.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이 속수무책으로 머리끝까지 화난대로 시간이 흐르던 어느날 반전이 일어났다. 청년비서가 싸인을 안해줘서 동생이 대학 가지못하게 되였다는 소문이 온 동네를 넘어 관리위원회와 리당까지 간부들 귀에 들어가게되였다.
그때당시 1고등바람이 불면서 간부들과 꽤 있는집 부모들 모두 개인교사로 동생을 초대해가곤 해서 동생상황을 모두 안타까워했었다.
농촌의 간부들모두 청년비서를 찾아가 머리좋은 사람을 농촌에서 붙잡아서 뭘하려고 하느냐고 항의들이대자 코너에 몰린 청년비서가 그제야 동생의 대학입학추천서에 싸인을 해주었다.
청년비서의 만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남포고속도도로공사판에 끌려간 오빠가 죽을뻔하다가 살아온건 아랑곳하지않고 제날자를 채우지 않고 왔다는 이유로 가을에 차려지게될 분배를 싹뚝 다 잘라버렸다. 동생일로 앙심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다시 원하는 대학으로 공부하러 가게되였지만 공급해줄 펑펑이가루는커녕 아니 우리가족이 풀칠할 강냉이조차 턱없이 모자랐다.
나는 늦가을 펑펑이가루 조금 강냉이닦개조금 엿 조금 동생에게 전달해주고 가족모두에게 비밀로 한채로 탈북의 길에 올랐다. 이것이 동생에게 건네준 마지막 펑펑이가루 였다.
중국에서 방황하는 몇년동안 동생걱정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을 찾아서
“동생아. 펑펑이가루 날라다주는사람이 없어서 대학은 어찌됐니?”
그러자 동생은 ” ~~~그냥 대학 잘 마치고 자리잡았소”
순간 여러가지 감정이 북받쳐오르면서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무슨 개고생하며 졸업을 해냈을 생각에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브로커가 동생이 굉장히 몸이 가늘고 약하다고 하는말에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거 같은 심정이다
동생아~사랑하는 동생아~~~
우리형제 죽기전에 다시만날 날 과연 올까! 나는 우리형제 못 보고 여기서 늙어죽을까봐 너무 겁난다.
건강하게만 살아있어다오
너무 보고싶다 그리고 사랑한다~~~
동생분도 결혼하고 아이낳고 키우면 자기외에 다른 누군가를 챙긴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될겁니다. 그 어려운 시절 그래도 최선을 다해 도와줬던 형제를 잊지않고 언젠가는 다시 만나 추억의 펑펑이떡을 같이 먹는날이 꼭 오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