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 모내기철에 온 학교가 동원되여 한달동안 황해도의 한 농촌으로 나가게 되였다. 첨에는 집을 떠나 친구들이랑 자게 됐다고 마음이 들떠있었지만 이내 농촌동원의 피곤함에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여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힘든것은 늦잠꾸러기 어린 학생들을 새벽전투에 불러내는것이였다. 그날도 해가 떠오르기전에 먼저 모단지를 옮겨놓는다고 아침밥도 먹기전에 논판으로 끌려나왔다.
아직 잠도 덜깬 눈꼽낀 눈을 비비며 맨발로 논판에 들어섰는데 아뿔사 차디찬 새벽논물에 온몸이 감전되는것 같이 오싹 놀라 잠이 싹 달아나 버렸다. 한창 논판과 모단지사이를 오가며 어느새 발도 찬 물에 적응해갈 무렵 이번에는 논판의 거머리들이 피냄새를 맡고 달려와 장단지에 달라붙어 진한 키스를 해대고 있었다. 그렇게 거머리들과 피터지는 혈전을 몇번 치르고 돌아다보니 아직도 옮겨야 할 모단지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이러다간 아침밥도 못먹고 하루종일 일할것같아 옆의 친구들이랑 불평절반, 농담절반 투덜되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큰 비닐방막이 있으면 모단을 거기에 올려 나르면 빠를것 같다고 제의했고 우리는 그게 좋은 생각인것 같아 주변의 비닐방막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찾아헤메다 보니 어느새 모내기논판에서 한참을 떨어져 나와있었다. 마침 겨울온실농사를 하고 난 후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비닐방막을 발견해 뜯어 가지고 오려는 찰나, “ 야, 이 새x들아, 거기 못놔?” 하는 고함소리와 멀리서 군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놀라 비닐방막도 팽개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지만 그대로 포기할 우리 “인민군대”가 아니였다. 어느새 학생들이 모여있는곳까지 따라와 비닐을 “훔치려”했던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 때리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거친숨을 내쉬며 달려오는 한 군인을 보자 나도 이젠 죽었구나 하고 공포에 질려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군인은 나를 그냥 지나쳐 버리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내 옆에 조금 떨어져 있던 한 친구를 붙잡고 때리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에는 어리벙벙했지만 이내 상황이 이해됐다. 그 친구는 평소 나랑 얼굴이 비슷해서 학교 선생님들도 종종 이름을 잘못 부르곤 했었다. 농촌동원나갈때 입던 국방색작업복까지도 다들 비슷하니 그 군인도 나랑 그 친구를 그만 헛갈린것이였다.
아직도 영문을 모른채 얼굴이 뻘겋게 되도록 맞고있는 친구를 보니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아니라 내가 했다고 나설만한 용기도 없었다. 설사 말한다 한들 이미 맞은 매를 되돌릴수도 없었다. 워낙 평소 친한 사이라 우리는 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별일없이 잘 지냈다. 이제 와서 그때 우리를 때리던 군인들에 대한 반감같은것도 없다. 우린 그냥 그런 시절을 다같이 살아온것뿐이다. 다만 나대신 매를 맞은 친구에게 그때 참 미안했다고 말하지 못한것이 아직까지 후회된다. 그때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친구야, 미안하다~ 혹 나중에 만나게 되면 내가 술 한잔 살께.
가장 진하게 기억나는 중학교 그시절, 돌아보니 참 아련한 시간이네요. 그때 친구들도 군인들도 잘 살고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