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동안 고뇌를 해왔다. 북한출신이라는 나의 뿌리에 대해서. 나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북조선, 그리고 북한이라는 이름과 함께 따라오는 탈북민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다른 고향분들의 좋은 모습을 볼때에는 내가 북한출신인것이 자랑스러웠고, 그들의 부족한 모습을 볼때면 그 사실을 부인하고 싶을만큼 부끄러웠던것이다. 참으로 리기적이며 철없는 이 갈등은 놀랍게도 보기좋게 깨어졌다.
이번 워싱턴 디씨지역에서 열린 탈북민 체육대회 및 문화행사에 사실 잠간만 들리려고 갔었다. 탈북민들이 한 팀이 되고 민주평통의 한국사람들이 상대편이 되어 족구와 축구경기를 시합했다. 나도 얼떨결에 둘다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왕 경기하는것 본때있게 해보자는 승부욕이 생겼다. 그런데 축구팀을 보니 우리 탈북민 팀은 반대편 민주평통 팀의 10대-20대 청년들에 비해, 아저씨들과 녀성분들만 많은게 아닌가! 국제시합에서도 북한은 매날 진다는 소리만 듣는데 여기서나마 이겨보고 싶다는 간절함에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딱봐도 못 이길거 같지만 하나님, 약한 자를 도와달라고… 성경의 아브라함이 바랄수 없는중에 바라고 소망했듯 나역시 그런 마음으로 간구했나보다. 거의 한시간이 넘게 지속된 축구경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리 탈북민 팀의 3:1 승리로 마감했다.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한지, 마지막 기운을 다해 뛰었던 보람이 있었다. 족구도 축구도, 응원도 먹는것도 진지하게 나서는 고향분들의 모습을 보니 힘이 난다. 북조선사람은 락천적이라 했던가! 무엇을 해도 삶에 대한 의욕을 갖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맘에 든다. 또한 평통위원들이 행사를 위해 설치한 천막들이 바람에 모두 뒤집혀지자 고향분들이 제일 먼저 뛰어가서 도와주웠다. 이렇게 정많고 마음 고운 사람들…무릇 나의 동족들에 대한 희망이 피어난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좋은 모습만 본것은 아니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몇몇 탈북민들이 술도 마시고, 민주평통리더들에게 이른바 침발리는 말이며 행동들도 보였다. 손풍금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서 평통리더들이 “노래방이 따로 없네” 할 정도로 시끄럽기도 했다. 예전에 탈북민 행사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있어서, 여러 탈북민들은 아주 창피해했고 한국사람들도 당황해했다. 그 때 나는 그들과 같은 탈북민이라는것에 수치감을 느꼈고 따라서 과연 내가 누구인지에 몹시 혼란스러웠었다. 문명사회에서 살아온 한국사람들의 기대치, 또는 주류문화의 기준에 맞추고 싶었던것이었을가?… 놀랍게도 이번에는 달랐다.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시끄러운 고향분들을 보며 민주평통사람들이 의문스러운 표정도 지었지만 그들이 탈북민을 어떻게 생각하든, 또 그들중 한명인 나를 어찌 생각하든, 나는 저 사람들과 같은곳을 고향으로 둔 탈북민이라는 사실이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나? 다 인생을 살아가며 완성되어가는것이지. 손풍금 연주하신 분은 “고향노래 하나 하겠습니다” 라고 한다음, 조선영화 <은비녀> 에서 나오는 노래를 연주하셨다.
나서 자란 내 고향을 저멀리 남겨두고
현해탄에 흘린 피눈물 그 얼마이더냐
꿈결에도 그리운 아~ 내조국
가슴속에 가슴속에 그 언제나 안고사네
나라 잃고 설음 많던 이국의 동포들은 우리 서로 헤어져서 한시도 살수 없네…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 다같이 이 노래를 따라 불렀고, 나는 심장에 맺힌것을 쏟아내듯 힘을 다해 불렀다. 우리만이 리해할수 있는것. 그가 술을 마시는 사람이든, 문명에 떨어진 사람이든, 뻥을 치는 아무개든, 할것 안할것 가릴줄 모르는 무식한 소인배이든, 그들 가슴속 깊은곳에는 고향과 함께 수많은것을 잃어버린 설음과 눈물이 가득 고인 나같은 사람들인것이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는 그 모든 부귀영화보다 노예살이로 천대받는 자기 민족과 함께 수모 받기로 선택했다. 나역시 발전된 사회의 문명인으로 인정받기보다 어떤 비난과 조롱을 받을지언정, 내 고향사람들과 함께 하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고향사람들이 언젠가는 누구 못지않게 온전하고, 은과 같이 고결한 사람들로 성화되기를 바라며… 나는 북조선이라는 저 땅을 조국으로 둔것에 가장 감사하고, 이분들을 내 고향사람들이라 부를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내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별의별 롱담을 다 하시던 남정네 같은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봄이면 사과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가을엔 황금이삭 물~결치는곳”… 그가 부르던 영화 <월미도>의 노래가사가 내 머리속에 맴돌아 나도 따라 부른다.
아~ 내고향 들꽃피는 그 언덕이
둘도없는 조국인줄 나는 나는 알았네
…
제가 아주 어렸을때 어머니가 ” 나서 자란 내 고향을 저멀리 남겨두고, 현해탄에 흘린 피눈물 그 얼마이더냐 ~” 라고 입으로 자주 흥얼되건 했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재일 교포도 아니고 해외에 친척도 없는데 왜 그런 노래를 부를까 하고 의아해하였었는데, 몇십년이 지나서 내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러니까요~
우리 모두 이 노래의 주인공들이 되었네요. 이런걸 함께 나눌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