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북한과 다른 점이 있다면 쿠바는 시골까지도 배급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였다. 수레에 빵이나 계란, 우유 등을 싣고 동네마다 다니며 종을 울리면 사람들이 배급표를 들고 나와서 양식과 바꾸어 갔다. 넉넉한 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마을을 다니며 나누어 준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뒷돈을 받지 않고 치료해준다고 한다. 물론 치료약 부족과 의료 설비의 낙후로 좋은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무료배급과 무상치료 -지구상에서 최소한의 사회주의 원칙이 아직까지 지켜지는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생각된다.
본인들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상황이였지만 먼곳에서 손님들이 왔다고 우리에게는 잔치상처럼 차려주었다. 양이 부족해 자기들은 먹지 않으면서 우리에게만 고기를 한덩이씩 올려주는 것을 보면서 미안한 생각과 함께 순수한 쿠바인들의 정을 느꼈다. 식사후에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쿠바의 명물인 사탕수수에서 생산한 누런 설탕을 가득 넣은 커피를 한 잔씩 나누어 주었다. 한여름 무더운 날씨임에도 뜨거운 커피를 한잔씩 마시니 어쩐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쿠바현지인들이 냉커피를 마시는것을 본적이 없다 . 아니 차가운 커피는 이상한 음료지 커피로 생각하지 않는것 같았다. 그때 마셨던 Cuban espresso 의 인상이 강렬해서 쿠바여행이후로 나 역시 Ice Americano를 일절 마시지 않는다.
우린 주로 시골의 어린아이들, 그리고 청년들과 어울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들에게 미국과 한국, 그리고 내가 떠나온 고향인 북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고 서로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도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흥미롭게도 쿠바사람들은 북한과 한국 모두에게 호감을 보였다. 북한은 사회주의라는 공통성으로 오래동안 외교관계가 유지되어온 형제나라였고 한국은 당시까지만해도 공식 외교 관계는 없지만 (이후 2024년 2월 쿠바와 한국은 정식수교를 맺었다) 빠른 경제성장과 K-Pop 등의 영향으로 쿠바인들에게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였다.
본인들이 처한 어려움을 알면서도 쿠바의 청년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낙천적이였다. 소리가 나는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뜯어 고쳐서라도 악기를 만들어 연주했고 음악만 있다면 어디서든 춤을 추었다. 쿠바인들이 사랑하고 자부하는 쿠바식 재즈는 그들이 가난 가운데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였고 서방의 문화로부터 그들만의 전통을 지켜주는 일종의 버팀목 같은것이였다.
열흘 간의 쿠바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 올 때 손 흔들며 바래주던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풍요가 타락이 되지 않기를,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기를 삼가 기원해본다. 만약 탈북민가운데 북한의 향수를 오래만에 느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혹은 사춘기로 방황하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쿠바에 한번 가볼 것을 꼭 권하고 싶다. 다 자란 어른에게든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든 반드시 유익한 경험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배급받는 넉넉찮은 살림에 손님을 위해 잔치상을 차렸네요.
남북한 모두에게 호감을 가질만도 하겠어요. 북한과 수십년 교류를 해왔고 한국은 이제 막 손 잡았지만 현실적으로 온 세계가 인정해주는 나라니까요.
남북한 모두 경험하신 분이 쿠바를 다녀오시니 정말 감정이 색다르시겠습니다.
저도 아아 아닌 진한 커피 참 좋아하는데요.
앞으로 다른 글들도 기대합니다.
에피소드 1을 지금 막 보고 왔는데 몇년 전 여행이네요. 한국-쿠바 수교 전임에도 이미 한국에 호감을 가졌다는…
쿠바 인민들은 전부터도 한국과 친하고 싶었네요!!!
고향을 떠나 온 이유가 희미해져서 인생에 대해 회의감이 찾아들 때 방문해도 좋을 것 같은 나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