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돛배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 발발 직후 아버지는 북한의 선전 선동에 끌려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군대로 탄원해 나갔다.  군사동원부(초모소) 에서는 아버지를 해군에 배치했는데 거기서 어뢰정을 타다가 제대 됐다고 어렸을 때 들었다. 만 7년 의 군복무 (병역의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때 가지고 온 것은 흰 해병복 한벌과 어뢰정용 배터리 2개가 전부. 그때도 북한의 전기사정은 안 좋았는지 자주 정전이 되였고 아버지가 7년의 청춘시절과 바꿔온 배터리 2개는 등잔불대신 꽤 오래동안 유용하게 쓰였다.

 

아버지는 제대(전역)후에도 바다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못내 그리우셨나 보다. 결혼하고 차린 작은 신혼집에 가구가 하나 하나 생길때마다 아버지는 거기에 붓으로 직접 자신의 추억을 그려넣으셨다. 그래서 내가 어릴적 살았던 작은 단칸방의 이불장, 옷장, 경대, TV 받침대, 찬장등에는 아버지의 청춘이  비껴간 바다와  그 파도위를 날아가듯이  달리는 작은 어뢰정 한척이 새겨져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까? 어린 나의 마음에도 바다와 배에 대한 동경심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팍팍한 이민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개인취미활동은 심신에 굉장히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나이 40이 되서야 주변의 지인들이 추천해서 골프채를 몇번 휘둘러봤지만 내 취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에 있는 Sailing Club 광고를 보고 들어가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저렴해서 놀랐다. 동네 redneck 으로 보이는 클럽주인 할아버지 말이 여기가 미국에서 배를 제일 싸고 쉽게 탈수 있는곳이라고 했다. 듣기좋은 그 할아버지의 구슬림에 넘어가 바로 class를 등록해버렸다. 그후 매주 주말마다 이론수업을 듣고 배위의 독재자같은 instructor의 욕을 먹으면서 빡세게 실전 연습한 결과 두달 후 드디어 요트조종사자격증을 받았다. 이 certificate 이면 어디가서도 요트를 빌려 바다로 나갈수 있다고 한다.

 

처음으로 직접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 손으로 돛을 올리고 싱그러운 바다 바람에 배와 나를 온전히 맡기는 순간 형용할수 없는 감동이 솟아났다. 아마도 아버지가 일생 그토록 잊지 못하는 바다에 대한 추억도 이와 비슷했으리라.  아버지가 워낙 과묵하고 엄격해서 나는 어렸을때 아버지와 별로 대화를 기억이 없다. 하지만 바다와 배라는 매개체로 인해 몇십년의 시차 두고 이렇게 아버지와 공감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해졌다.  끝없이 넓은 바다위에 있는것은 나와 척뿐, 귓가에 들리는것은 오직  ~~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재촉하듯 펄럭이는 돛자락…문득 인생은 돛배같다는 생각이 들었.

 

  • 바다위에 길이 없듯이 인생도 정해진 길은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된다.
  • 목적없이 사는것은 나침판 (compass)없이 항해하는것 처럼 방황하기 쉽다.
  • 아무리 모든 준비가 다 되여있어도 바람과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면 항해하기 힘들다. 인생도 모든것을 완벽히 예측하고 대비할수는 없다. 가끔은 인내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 매번 sailing 할때마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배운다. 인생도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실수하면서 배운다.
  • 바람을 잘 이용하면 순항하지만 바람을 거슬러 무리하게 가다간 뒤집힐수도 있다 (capsized).
  • 바람은 수시로 바뀐다. 인생도 마찬가지~ 역경과 기회는 때없이 찾아온다.
  • 꼭 가고싶은 곳이 있어도 역풍이 불어오는곳은 (no-sail zone) 곧바로 가기 힘들다. 좀 돌아가더라도 zig-zag로 항해하던지 바람방향이 바뀌길 기다려야 한다.  
  • 바다에서는 빨리 가는것보다 정확히 가는것이 더 중요하다. 어딘지 모르고 막 달리다가는 암초에 걸려 좌초되기 쉽다 (aground).
  • 때에 따라 기수를 바꿔주어야 할때가 있고 (tacking) 멈추고 쉬어야 할때가 있다 (heaving-to).
  • 순풍이라고 주의하지 않고 너무 빨리 달리다가는 자칫 위험할수도 있다 (accidental jibe).
  • 배위에서는 모두가 선장 (skipper) 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아니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인생도 여러 사람이 조언을 줄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혼자서 하고 책임도 혼자 진다.
  • 먼 항해를 할때 제일 힘든것은 항해기술이 아니라 외로움, 고립감이라고 한다. 인생도 고독을 이겨낼수 있을때 멀리 갈수 있다.       

고향을 떠나 낯설고 새로운 곳에 인생이라는 돛배을 띄우고 오늘도 열심히 노를 젖고 계시는  (저를 비롯한) 우리 탈북민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노래 하나를 공유하고자.

 

인생은 돛배(Youtube 동영상보기)

 

출렁이는 세월의 파도위에

인생은 척의 돛배란다

멀고 재촉하는 물결따라

돛배는 해와 달을 이고 간다

~인생은, 인생은 돛배

세월 싣고 삶의 신화 엮어 간다.

                                              

 

2 thoughts on “인생은 돛배”

  1. 외로이 떠 가는 운명의 쪽배
    키 없이 노 없이 어데로 가느냐
    풍랑에 시달려 고달픈 마음
    나라 잃어 외로워라, 아~ 내 인생아.

    Did we really betray the county? Or
    did they abandon us all? Vote on, or against please!

    1. Someone joked me before asking “so you betrayed your country?” I said: more accurately the regime betrayed the people and I betrayed the regime, so I might not betray the country.
      I think many of us want to go back to our home country when the regime collapses and can do something good to th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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